강림절(대림절) 3째 주일(209. 12. 13) 설교본문 분석
본문: 눅 3:1-14절
I 본문: (눅 3:1-14, 개정)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II. 본문해석 방법:
첫째방법: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 속에서 세례요한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곧 사 40:3이하에서 해석하는 방법, 곧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 베푼 것을 주님의 강림을 준비하는 신앙의 자세로 해석하는 방법
둘째방법: 세례요한은 선지자 가운데 마지막 사람으로 이해하여, 구약의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비하는 사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준비하는 역사로서의 구약의 역사(Die Alttestamentlichen Geschehen als die Geschichte der Vorbereitung des Adventes Jesu Christi)’로 해석하여 ‘약속과 성취’ 혹은 ‘예언과 성취’의 구조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누가복음 신학의 특성)
셋째방법: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는 말씀에 착안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종말론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방법
그러나 이상 3가지 방법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설교자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설교의 내용을 전개해 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III. 본문분해:
3:1-2: 세례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에 대한 소개, 설교본문의 역사적 정황에 대한 보고이다.
3:3 : 세례요한의 당시 활동에 대한 소개: “요당 강 부근 각처에서 ‘죄 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다”
3:4-6: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게 된 신앙사적 배경, 혹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세례 요한을 통하여 성취되었다는 마태복음 저자의 해석.
3:7-14: 세례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의 구체적인 내용들
IV. 설교구성을 위한 착안점:
1. 어느 본문분석 방법을 선택하건,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준비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예언자들의 활동을 시작으로 세례 요한에 이르는 전 구약성경적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위한 선행된 역사로 해석하는 것이다.(역시 누가복음의 신학적 특성)
2.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은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때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즉 구약성경 역사의 마지막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라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 자신도, “독사의 자식들이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역설적으로 ‘종말론적 심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읽어내야 한다.
3. 종말론적 심판을 맞이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선포한다.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더 자세히 말하면,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군인들은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로 족한 줄로 알라” 등등.
4.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것은 ‘회개’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자들에게는 ‘구세주’이지만, 반면에 남의 것을 강탈하고, 죄 짓는 자들에게는 ‘심판주’로 임하시는 분이다. 강림절 주간인 만큼 주님의 강림을 맞이하는 가장 우선적인 전제조건은 ‘회개’이다. 왜냐하면 심령이 깨끗한 자만이 하나님의 얼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참조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곧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하라”는 말씀을 성취하는 것은 세례요한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가 주님의 오시는 길을 평탄게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5. 우리 주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죄인인지라도, 이 세상의 죄 된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 강림하실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강림은 심판이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 된 인간, 곧 회개할 인간의 구원을 위한 것 하나님의 사랑(참조 요 3:16)임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될 것”(눅 3:6)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회개’로써 주님의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한 사람들에게 속히 오실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교우들처럼 오늘 이 순간에도 “마라나타!”라고 기도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