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그마 세미나 - Kerygma Sem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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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에는 각주도 있습니다.
II-9. 다가올 구원과 ‘새 성전’에 관한 선포
(에스겔, 33-48)
*** 외울 성구: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겔 33:14-15)
*** 함께 읽을 성경: 에스겔, 33-48
*** 토의주제: 1. 먼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들이 의당히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2. 당신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3. 당신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4. 당신은 이유 없이 여러 가지 환난과 유혹과 시련을 당하고 계시다면,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5. 당신은 당신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A. 구원의 파수꾼으로서의 예(대)언자
에스겔은 BC 587년 유다 왕, 여호야긴과 함께 추방당한 자로서, 포로 전 문서 예언자(대언자)들의 심판 선언을 마무리 짓는 말씀을 선포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에스겔에게서는, 예레미야에게서 발견되는 연약하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화석같이 굳은 금강석 같은’(겔 3:9) 모습이 발견됩니다. 또한 대언자 이사야가 ‘압축되고’ 강력한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다면, 에스겔은 부드럽고 자상한 말로 대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레미야처럼 사람들의 괴롭힘과 그를 불안하게 하는 억압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에스겔은 유다 백성의 멸망, 더 자세히 말하면 성전의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유다 백성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 족속에게까지 명백히 선포합니다. 이러한 심판 선언을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증명말씀’으로 - 자신의 선언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의미에서 - 선포합니다. 그래서 침멀리Zimmerli는 에스겔을 가리켜 “예언의 칼뱅Calvin der Prophetie”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대언자, 에스겔이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이방 족속의 멸망을 선포하였다는 점에서는 다른 대언자들과 - 선포 양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 특별히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미 앞에서 인식했던 것처럼, ‘심판선언’이 대언자의 주된 직무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 에스겔은 예언자 혹은 대언자의 ‘선포의 임무’를 ‘파수꾼’에 비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대언자들과 구별됩니다. 에스겔은 자기의 대언의 직무를 ‘파수꾼’으로 위탁받은 것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점은 우선 그의 소명기사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에스겔은 자신의 소명기사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6-17) 그러나 ‘파수꾼’의 임무는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것은 구원받을 대상의 구원여부가 ‘파수꾼’에게도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책임이 어느 정도 ‘파수꾼’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참조. 겔 3:18-21, 병행 겔 33:7-9) 이러한 ‘파수꾼’ 직무의 책임성에 대한 소명기사는, 이제 대언자의 직무는 단지 ‘하나님 말씀 대언’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범죄한 백성들을 구원할 책임까지 ‘대언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인’의 심판은 악인 자신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파수꾼’도 심판을 선포하지 않은 책임을 담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지, 곧 뜻은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대언자의 입을 통하여 여호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너(= 에스겔)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선포’ 속에서 ‘심판의 말씀’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구원의 말씀’이 주된 선포의 목적이요 내용이라는 것을 다시금 인식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과거의 죄에 집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호와 하나님은 미래 중심이지, 과거 중심의 하나님의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회개와 구원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義人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惡人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義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13]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14]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15]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겔 33:12-15, 병행 겔 18:21-28)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선포한 말씀, 곧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 3:19-21)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즉 회개하는 자에게는 과거를 묻지 않고 용서해 주시며, 그에게는 그의 죄를 대속해 주실 그리스도가 임하실 것이요,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하늘’에 거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죄인들은 둘째 사망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참조 계 20:12-14)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대예언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약 성경적 전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파수꾼’처럼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심판과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동시에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선포의 주된 내용은 - 예언자들의 선포처럼 - 역시 ‘하나님 나라의 구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다가올 구원에 관한 파수꾼의 선포를 보다 구체적으로 34-39장에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B. 미래에 있을 구원에 관한 신탁divine message; oracle.
에스겔서의 ‘신탁’,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선포하라고 주신 말씀’ 중에는 구약에서 이미 선포된 말씀이나, 신약성경에서 다시 반복해서 선포되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우선 ‘나쁜 목자와 선한 목자’에 관한 것(겔 34:1-31); ‘이방 족속 에돔Edom의 심판에 관한 예언’(겔 35:1-15); ‘이스라엘 산들에 관한 좋은 소식’(겔 36:1-15; 비교 6장); ‘이스라엘의 정화淨化’(겔 36:16-38); ‘마른 뼈들의 부활’(겔 37:1-14); ‘흩어졌던 것들의 재결합’(겔 37:15-28); ‘곡과 마곡: 세속적 권력의 비난과 몰락’(겔 38:1-39:29)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나쁜 목자와 선한 목자’에 관한 말씀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 정화’에 관한 말씀과 ‘마른 뼈의 부활’에 관한 것과 ‘곡과 마곡의 멸망’에 관한 것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 우선 에스겔 예언자는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를 “자기들만 먹는 목자”로 규정합니다.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겔 34:2,4)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겔 34:10, 이밖에 11-12절)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상응하게 예수님께서도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인자人子(= 예수님)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6)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대언자, 에스겔이 “내(= 여호와)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34:23-24)는 말씀은 다윗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참조 겔 37:24)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요셉과 마리아의 혈통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참조 마 1:1) 그리고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요 10:11-12)고 말씀하심으로써,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와 자기 자신을 역설적으로 대조하여 증언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구약 에스겔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 강림을 약속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 이름의 명예를 위하여 - 더렵혀진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 이스라엘의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새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이전에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은 옛 언약을 새롭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각인시켜 주십니다. 이러한 신탁神託을 선지자 에스켈은 다음과 같이 대언합니다.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5-28) 이러한 에스겔의 신탁은 한편으로는 요엘 대언자의 약속과 상응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과 오순절 성령강림과 연결됩니다. 종말론적 구원의 차원에서는 ‘거듭나야할 인간, 곧 성령으로 거듭날 새로운 인간’과 관계됩니다. 그래서 침멀리Zimmerli 같은 학자는 이를 “구원언약”이라고 해석합니다.
우선 ‘새 영을 주시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된 것입니다.(욜 2:28-29)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오순절 사건을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17-18, 20-21)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상의 일련의 증언들을 종합해 볼 때, ‘성령 강림’은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요엘에 의하면, ‘말세末世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겔 선지자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정결케 하는 방법으로’ 새 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후에 다시 살아날 부활의 몸은 바로 ‘영(성령)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4);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
부활에 대한 예시: 성령 강림, 곧 ‘새 영을 부어주시는 사건’이 종말론적 사건이라는 것은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에스겔의 환상Vision’에서 명백히 계시됩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37장에서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는 비젼’을 봅니다. 그런데 ‘마른 뼈를 살아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말씀’과 ‘성령’입니다. 이점을 에스겔서는 그림처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 37:7-10)
그 다음 에스겔서는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겔 37:11)이라고 설명을 덧붙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대언하기를, “내 백성들아 내(= 여호와)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7:13-14)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에스겔 대언자의 신탁에 상응하게 예수님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십니다.’ “그(= 예수)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6)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죽었던 자들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0-53) 이러한 신약성경의 증언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일부러 의도적으로 에스겔 선지자의 ‘신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신약을 기술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목격자들의 증언이었습니다.(참조 행 3:14-15) 따라서 에스겔 대언자의 ‘신탁’은 사도들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것입니다.
곡과 마곡의 멸망: 이제 에스겔 대언자의 ‘신탁’이 종말론적 ‘신탁’이라는 것은 마지막 ‘곡과 마곡’의 멸망에 대한 ‘신탁’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에스겔은 ‘곡’과 ‘마곡’이 여러 나라들과 힘을 모아 평안히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공략할 것이라는 신탁을 대언합니다. “너(= 마곡)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될지어다.”(겔 38:7) 그리고 곧 이어서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폐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 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 한 많은 백성이 광풍 같이 이르고 구름 같이 땅을 덮으리라.”(겔 38:9-10)고 대언합니다. 그런데 ‘곡과 마곡’은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들의 짐승과 재물과 금과 은을 약탈할 것’이라고 에스겔은 대언합니다. 그러나 대언자 에스겔은 ‘곡와 마곡’이 끝내는 멸망을 받을 것을 예언합니다. “그 날(= 마지막 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쪽 사람이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길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에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매장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 = 곡의 무리)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겔 39:11)
그러므로 갓월드Gottwald는 “마곡과 곡이라는 자가 유다의 팔레스틴 복귀 이후에 많은 민족들을 이끌고 유다를 공격한다. 그러나 야훼의 직접 개입으로 전 군대가 궤멸당하고, 그럼으로써 원상 복구된 예루살렘이 방해받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 닦여진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마곡과 곡’은 회복된 예루살렘의 거민을 약탈하는 ‘세력’으로 표징되고 있는 점에서, ‘마곡과 곡’은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성도들을 늑탈하려는 사탄 마귀를 예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 상응하게 요한 계시록에서는 ‘마곡’과 ‘곡’이 적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의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악한 세력을 모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계 20:8) 왜냐하면 마지막 멸망 받을 것은 바로 ‘사망’이기 때문입니다.(참조 고전 15:55-56) 그러므로 혹자는 ‘곡과 마곡’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대적자이며, 신약에서는 종말에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할 ‘적그리스도’, 곧 ‘사탄 마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C. 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예언
에스겔의 신탁은 ‘새 성전’에 대한 신탁으로 끝이 납니다. 즉 새 성전에는 성전을 떠나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형상화 됩니다.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겔 43:2, 4-5) 특히 새 성전의 규모에 대한 신탁은 처음 장막을 짓도록 모세에게 지시하신 것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그 규모를 지시하셨다는 것입니다.(참조 출 25-31장) 이것은 노아가 처음 방주를 지을 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것과 같습니다.(참조 창 6:13-16)
특별히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기업이 되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들(=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겔 44:28) 이 말씀은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는 ‘생명수 샘물’이 흘러넘칠 것을 예언하는 데, 이것은 ‘생명수’를 우리들에게 주시는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성전은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골 1:18; 엡 1:22)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시는 분으로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동시에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는 종말론적으로 새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와서 구원 받은 백성에게 줄 생명수 샘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계 21:6)
